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중이다. 실제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바라는 ‘허슬(hustle) 문화’를 그만두는 것이다.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
2022년 7월,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 플린이 올린 한 틱톡 영상의 문구입니다.
이 영상은 순식간에 350만 조회수를 돌파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동시에 여기서 나온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받은 만큼만 일하자
코로나19가 유행하던 팬데믹 초기, 미국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해고됐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완전히 은퇴해버린 사람들도 많았고
높은 실업수당으로 고용시장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결국 남은 직원들이 다른 이들의 빈 자리를 채워가며 초과 근무를 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허슬(hustle)이 되면서 번아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조용한 사직을 다룬 다수의 연구보고서에서는 이 단어가 유행하게 된 배경을 여기에서 찾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용한 사직은 한국 직장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받은 만큼만 일하자’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고, 잘리지 않고 생존할 만큼만 일한다’는 취지인데요.
2021년 12월 사람인에서 직장인 3,293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약 70%가 ‘월급받는 만큼만 일하면 된다’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조용한 사직이 유행하기 전부터 이런 생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조용한 사직이 유행하는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용한 사직’일까?
그런데 조용한 사직이라는 단어가 구체적으로 뭘까요? 어떻게 정의해야할까요?
조용한 사직에 대해 다룬 기사나 영상을 보면,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정해진 시간과 업무범위 안에서만
일을 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방식’이라고 해서 업무적인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실제로 퇴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떠난 상태’라고 해서 심적인 면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워라밸을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번아웃의 다음 스텝 같기도 합니다.
업무적인 부분만 강조를 해서 조용한 사직을 바라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칼같이 정시에 출근해서 퇴근시간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
일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일하면 어떨까요? 이것을 조용한 사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21년 공직실태조사에 조용한 사직과 관련한 문항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 나는 결근한 동료의 업무를 자발적으로 돕는다.
- 업무상 불합리한 요소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 조직에 남기 위해 어떤 직무라도 수행할 용의가 있다.
만약 위에 있는 문항에 ‘아니오’라고 적는다면 그것도 조용한 사직일까요?
그렇다고 해서 심적인 면을 강조해서 조용한 사직을 바라보면 그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HR 부서에 일하고 있는데, ‘조용한 사직’ 인원을 파악해야하는 상황이 와서
조용한 사직 인원을 ‘실제로 퇴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일을
잘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떠난 상태’인 인원으로 정의했다면
‘일을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떠난 상태’를 어떻게 정량화해야할까요?
업무 만족도, 워라밸 정도 등등을 Likert 척도로 구분해야할까요?
문제 정의에서 분석이 시작된다
이번에 HR 도메인 데이터를 분석해볼 일이 생겨서
‘조용한 사직’의 원인 파악을 주제로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었는데,
‘조용한 사직’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주어진 데이터를 먼저 보고
‘조용한 사직’을 ‘업무성과는 낮지만 퇴직하지 않은 인원’으로 정의해서 데이터 분석을 했었는데
이렇게 분석을 하다 보니 중간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논리가 빈약한 보고서가 탄생… 했었는데,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문제 정의의 중요성을 겪게 되었고 데이터에서 문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문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데이터를 추출하는 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기사나 영상을 보면 “‘조용한 사직’이 MZ세대 위주로 유행하고 있다”는 부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조용한 사직’이라는 문제 정의를 확실히 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현상들에
‘조용한 사직’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로 인해 MZ세대에 대한 프레임만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한 해고가 아닌 제대로 된 정의를 통한 확실한 분석 및 해결방안이 필요하다
팬데믹이 종식되고 나서, 조용한 사직에 대응해서
기업이 ‘조용한 해고’라는 것을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아디다스, 어도비 등 글로벌 기업에서, 직원 성과가 저조할 경우 업무 재배치 등을 통해
직원 스스로 퇴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또 한편 신규 풀타임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기존 근로자의 역할을 전환해 필요한 업무를 맡기는,
‘조용한 고용’이라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조용한 사직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조용한 해고나 조용한 고용과 같은 방식으로
기업이 대응을 한다면, 이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용히 잘 근무하고 있던 어떤 인원에게 조용한 사직 프레임을
씌워 해고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도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춰 업무환경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제대로 된 ‘조용한 사직’ 정의를 통해 회사 내부 인원의 상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인원들에게 해결방안을 제시한다면 조직의 생산성 하락 방지에 큰 도움이 될겁니다.
데이터 분석의 존재 의미가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현상만 파악하는 것이 아닌,
어떤 문제를 그에 맞는 데이터로 풀어가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느 기업의 데이터를 가지고,
퇴직 분석 및 퇴직 관련 대시보드를 만들어보면서
조용한 사직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Reference
① ‘조용한 사직’, 다시 정의해야 하는 이유
② 회사가 나의 ‘조용한 사직’을 모를 거라는 착각
③ ‘조용한 사직’을 아시나요?
④ 조용한 사직, 위험한 문화인가?
⑤ ‘조용한 퇴사’에 반격… 이젠 기업들이 ‘조용한 해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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